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튜 B. 리지웨이 (문단 편집) == 그 외 == * 월튼 워커 미8군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이전까지 리지웨이는 유엔군의 군수물자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중공군 참전 이후부터 한국군과 미군이 중공군을 만나 대패하면서 막대한 군수물자를 챙기지도 않고 후퇴하는 바람에 아까운 물자들이 유실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예하부대에 군수물자를 소중히 간수할 것을 지시했다. * 6.25 전쟁 당시의 다른 유엔군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리지웨이도 지휘력이 부재하고 훈련 상태도 엉망인 한국군을 불신했다. 리지웨이의 한국군에 대한 불신을 잘 보여주는 예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951년 초,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 10개 사단을 무장시킬 장비를 추가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하자, 리지웨이는 같은 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서 워싱턴의 [[육군부]]에 이승만의 요청을 거부해 달라는 내용의 비밀전문을 보낸다. 그가 이러한 내용의 비밀전문을 보낸 이유는 '''한국군이 그 군수물자들을 가지고 있다가 중공군에게 빼앗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실제로 [[횡성 전투]] 당시 한국군은 황급히 후퇴하면서 미국이 지원한 야포 등을 제대로 파기하지도 않고 죄다 버리고 물러났다. 당연히 이 무기들은 중공군이 노획하여 미군을 공격하는데 쓰였다. 횡성전투 한달 후 다시 해당지역을 수복하는 전투에 참가한 미군의 수기 여러곳에 이에 대한 증언이 나온다. ] 리지웨이는 비밀전문에서 아무리 한국군에 장비를 지원해 주어 봤자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지금의 한국군에게는 무엇보다도 다수의 유능한 지휘관 및 엄격한 훈련 체계를 갖추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리지웨이는 이 비밀전문에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의견(우수한 국군 인재 양성)을 덧붙여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리지웨이 장군의 이러한 기본적인 구상은 제주도에 체계적인 병사 양성을 위한 육군훈련소, 밴 플리트 장군에 의해 1951년 10월에 한국군의 전문적인 장교단 양성을 위해 [[경상남도]] [[진해]]에 [[육군사관학교]] 를 건립하는 것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 이와 같이 6.25 전쟁 당시의 유엔군 지휘관들은 졸전만 하던 한국군을 믿지 못한 나머지, 위에서도 언급한 유엔군의 한반도 철수 계획 시에는 아예 '''한국군을 미군에 병합시키는 방안도 검토했다.'''[* 유엔군의 한반도 철수 계획안에서는 한국 정부와 한국군이 [[제주도]]에 남아 공산군에 항전하든지, 아니면 제주도를 포기하든지 일단 한국군을 미군에 병합시키는 일 자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사항'''으로 못박아 놓았다. 출처: <미국 비밀 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장면> - 이흥환 편저, 삼인출판사, 2003년] *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는 데에 제일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만 한국에서 그의 평가는 의외로 박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이승만과 사이가 좋았던 맥아더, 전쟁 후에도 한국을 돕는데 노력한 [[밴 플리트]]와 달리 리지웨이는 사이가 그다지 좋질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시선이지만) [[인천 상륙작전]]과 같은 임팩트 있는 사건이 부족한 것도 한 몫 한다. 이 결과 리지웨이가 큰 관심을 못 받았고, 심지어 북진통일을 달성하지 못한 졸장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 [[월드 오브 탱크]] 역사웹툰에도 [[http://worldoftanks.kr/ko/content/history/thunderbolt/|등장했다.]] * 2021년 8월 24일 클리앙에 리지웨이가 남긴 자서전의 리뷰가 올라왔다.[[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6440185|#]]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의 우파와 좌파 모두가 불편해할 이야기인데, 우파 입장에서는 맥아더가 중공군을 너무 깔보다가 참패를 당하고 "한국군은 국방부장관에서 일반 사병에 이르기까지 리더쉽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한국군의 지휘관들은 함량 미달의 인물들이 정치적 빽으로 임용된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기 체면만 생각하고 부하직원의 충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전투에서 패했을 때는 부하들보다 자기들이 먼저 도망가는 데 앞장서는 게 다반사였다."고 혹평한 것에 대해 불편하고, 좌파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의 발호를 막는 것이 자신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하고 미국이 참전한 건 분명 맞지만, 미국 역시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점이 불편하다. 그 밖에도 리지웨이는 자서전에서 "어떤 희생을 감수하든 적들을 박살내고 무조건적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는 핵무기가 만들어진 현대 세계에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전쟁에 있어서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야 하고 그 목표가 달성되면 전쟁을 멈추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제한전 개념은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폭주하는 정부나 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분류:미국의 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6.25 전쟁/군인]][[분류:1895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분류:햄프턴(버지니아) 출신 인물]][[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분류:통합전투사령관]][[분류:미국육군사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